
왼쪽이 현담스님. 오른쪽이 고연태라는 강원도 영월 출신 입대동기로 논산 훈련소 자대배치 같은 중대까지 함께한 동기사진. 현담스님은 1975년~1978년까지 속초 동해안 경비사령부 56연대 전투지원중대 본부중대 소속. 고연태는 2소대 출신으로 제대 후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음. 대한민국에서 가장 경치좋고 아름다운 그 당시 동경사 하조대 유격장은 바닷가가 너무 아름다운 곳에 있음. 현역으로 있을 당시 1군 사령관은 정승화 중장, 동경사 사령관은 전성각 육군 소장이고 56연대 연대장은 이상후(사모님이 독실한 불자, 그 당시에 현담 스님이 사병인데 특별히 관사로 불러 신심나는 불교대화를 서로 나누고 설악산 구복암에 함께 가서 불공도 드리고 절에 에로사항인 진입로 보수공사를 부탁하여 부대에서 작업해서 길을 깔아드렸는데 2011년 2월달에 들렸을 때도 그 길이 아직도 있었습니다. 그 공덕이 한량없는데 혹시 사모님 소식을 아시는 분은 꼭 연락을 받고 싶은 마음에 글로써 공개적으로 찾습니다.), 중대장은 김일우 육사 25기(김일우 중대장님은 나중에 장군 승진이 안 되고 17사단에서 부사단장으로 몇 년전에 예편하시고 또 한명의 중대장은 현상호 육사 29기로 유신사무관으로 소령다는 것을 포기하고 예편해서 국세청 서기관출신으로 근래에 송파세무소 서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나 세무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인연이 있으셔서 군대에 있을 때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군대에 있을 때도 불교믿는 현담을 개종시키지 못해 안타까워 하셨는데 제대 후에 소문듣고 국세청 회의왔다가 수선회 사무실을 직접 방문 하셔서 옛날 얘기 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지금은 현담에게 회원중에 세무사 일거리 맡길 것이 있으면 보내달라고 합니다.) 소대장은 육사 30기 이성출 소위(2010년 한미 연합사 부사령관. 육군 대장까지 승진한 후 예편. 5군단장 중장 시절 그리고 대장 시절 현담을 찾아서 두 번 만났습니다. ) 군대생활을 해도 육사 출신 중대장, 소대장을 만난 것은 큰 복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다 잘 되었습니다. 자기 직속 상관 소대장이 별4개 까지 다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를 만난 사람은 항상 잘 된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나지만 전투지원중대 1소대 1분대 분대장으로 부산 출신 반원숙 하사 가 보고 싶습니다. 혹시 부산 지역에 사는 불자 중에 성이 반씨 이기 때문에 아시는 분 있으면 연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곽중사 님이 생각이 나는데 월남 갔다 오셨고 기합을 잘 주는 분입니다. 억울한 것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현담은 사격을 잘 못했습니다. 다른 훈련은 잘 받았어도 사선에만 올라가면 사격술 예비훈련에서 배운대로 호흡을 멈추고 마음속으로 가늠자에 수평과 수직을 조절하여 살짝 수평위에 올려놓고 방아쇠를 서서히 당기면 나도 잘 맞출 수 있었을텐데 누군가가 순식간에 첫 발을 쏘면 촌놈이 총소리에 놀래서 긴장이 되어 배운수칙은 적용이 안 되고 뻥뻥 쏘다 보면 그 당시 총알 10발 주면 8발을 맞춰야 합격인데 (공수부대는 9발) 나는 5발, 6발. 사격점수 불량으로 항상 기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진짜 1년에 한번 전체 평점을 내는 부대단위 사격측정이 실시 되었습니다. 동경사 사격장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설악산 입구 설악동 근처 개울가 넓은 평지였는데 측정에서 열외가 없기 때문에 다 나갔습니다. 나도 자신감을 갖고 잘 쏴야되겠다고 했더니 사선에 올라가기도 전에 몇 명을 빼면서 잘 쏘는 특등사수 사병과 군복상의를 바꿔입으라고 하여 나 대신 잘 쏘는 병사가 내 이름으로 사격을 하러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안심하고 밖에서 구경하고 있는데 끝난 후에 사격 성적이 불량한 사병들의 명단을 부르는데 내 이름이 불리는 것입니다. 특등사수가 쐈으면 틀림없을텐데 내가 불리다니...조금 후에 기합이 시작되었고 알고 보니 자기 총 쏠때는 잘 쏘던 사병이 남의 것이라고 적당히 쏜 것입니다. 억울하게 총 한번 못쏴보고 무성의한 특등사수는 다시 군복 갈아입고 부대로 저녁먹으러 트럭타고 다 이동했는데 성적 나쁜 15명 정도는 오리걸음으로, 포복으로 기어서 설악산에서 장산리를 지나서 물치있는 부대까지 4시간동안 월남갔다온 3소대 곽중사한테 기합받고 식은밥 먹고 부대와서 또 구받받은 생각을 하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때 명의를 빌려준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인데 이렇게 심한 기합을 억울하게 받은 병사는 모두 15명 입니다. 꿈같은 시절, 추억같은 옛 이야기 입니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라 상상도 할 수 없을 그 당시의 군생활 입니다. 이 글을 읽는 보살님들. 얼마나 억울했으면 아직도 기억하겠습니까? 아뢰아식에 박혀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군대 있을 때 나를 때렸던 고참들 이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실명을 쓰지 않고 혼자 삭힙니다. 어디부터 때렸는지, 가슴부터 시작해서 주먹으로 발길로 코잡고 비트는 것, 뺨따구 때리는 것, 몽둥이로 공포분위기 조성하고 기합받던 것이 습관적으로 때리던 고참들은 기억못해도 억울하게 맞을 때는 어디부터 맞았는지, 때리면서 무슨 말을 했는지 다 기억합니다. 나는 술, 담배를 그 당시에도 안 먹어서 드룹푸스 사탕을 받아먹었습니다. 그리고 이 닦을 시간이 아침에 1번 밖에 없어 그냥 잤더니 이가 상해서 어금니에 구멍이 났습니다. 부대 치과병원에 갔는데 진짜 아파서 외출증 끊고 가서 기다리는데 보안대 사모님이라고 먼저 받고 헌병이라고 먼저 받고 힘없고 백없는 말단 졸병은 이가 아파 밥도 못먹고 밤새도록 잠도 못잤는데 서열에 밀려 오후에 받았습니다. 이런 부조리가 나를 아직까지 이를 튼튼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땜빵으로 콘크리트를 쳐주었는데 아직까지도 30년이 지났는데 탄탄합니다. 그 뒤부터는 이 아픈 것은 무엇보다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또 자기전에 꼭 이를 닦고 사탕이나 단 것은 절대 안 먹습니다. 이런 초기의 고통이 현재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이 아픈 고통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기 때문에 기억하는 것입니다. 울고 웃으면서 이렇게 정신적으로 서서히 성장해가며 도를 닦는 자세로 군대생활을 해야 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 때린 사람을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데 사회에서 억울한 일로 경찰이나 검찰에 가서 당한 사람은 평생 수사관이나 담당검사, 담당재판판사 이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 한이 맺히면 내생으로 넘어와서 역할이 바뀌어 또 억울한 사람이 만들어지고 보복하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윤회를 벗어나려면 모든 것을 잊어버려야 됩니다.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이 업장소멸입니다. 기억 상실증에 걸리나는 것이 아니고 '그럴수도 있겠구나, 전생에 내가 악업을 지었던 것을 금생에 받는구나' 이렇게 해석해야 됩니다. 그러면 해소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사격장에서 이름을 빌려주고 기합받는 것도 과거생에 상관으로 있을 때 부하에게 부당명령을 내렸던 과보입니다. 그 과보로 졸병이 되고 그 명령을 받기 위해서 겪었다고 생각하고 심하게 기합받은 곽중사는 내가 전생에 갈궜기 때문에 당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습니다. 우연히 사기를 당하고 배신을 당하고 도둑을 맞은 것 같아도 허공계에 전생에 저질렀던 녹화테이프, 녹음테이프 풀어지는 것처럼 그대로 받는 것입니다. 마음을 닦고 참선을 하면 인과가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화두가 잘 들리지도 않고 업식이 탁해서 중생노름을 영원히 할 것입니다. 사진 한장이 절반이라도 해석을 하면 다 신심나게 만드는 법문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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