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6년 일병 때 전우애를 발휘하여 내무생활에 솔선수범하고 타에 모범이 되는 사병으로 중대장으로부터 추천 받아 연대장 표창을 기쁨에 환하게 웃는 모습을 사진병이 찍은 장면.
군대 생활 당시에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작사, 작곡한 나의 조국이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전군에 하달되어 점호시간에 외우지 못하면 암기상태 불량으로 영창 15일 보낸다고 꼭 외우도록
하였습니다. 행군할 때도 이동할 때도 훈련 받다 휴식할 때도 다른 군가는 못 외우면 넘어갔지만
나의 조국만은 외우도록 하였고 부대내에 점심시간에 스피커로 틀어주기 때문에 저절로 외워졌기
때문에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나의 조국(박정희 작사,작곡)
백두산의 푸른정기 이땅을 수호하고
한라산에 높은기상 이겨례 지켜왔네
무궁화꽃 피고져도 유구한 우리역사
굳세게도 살아왔네 슬기로운 우리겨레
영롱한 아침해가 동해에 떠오르면
우람할 손 금수강산 여기는 나의 조국
조상들의 피땀어린 빛나는 문화유산
우리모두 정성다해 길이길이 보전하세
삼국통일 이룩한 화랑의 옛정신을
오늘에 이어받아 새마을 정신으로
영광된 새 조국에 새역사 창조하여
영원토록 후손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세
잊혀지지 않는 나의 아뢰야식 가운데에 있는 군대생활 하면서 겪었던 고생한 이야기 중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이등병 때 전입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바로 유격훈련이 실시가 되어 걸어서
야간행군으로 밤새도록 완전군장하고 50분걸으면 10분간 휴식하며 추운 겨울 실시를 하였습니다.
걸어가면서 얼마나 졸렸는지 지금도 그 때만 생각하면 잠자는 사람보다 더 부러운 사람이 없었고
세상에 아무리 훈련이 힘들다고 해도 잠안자고 걷는 야간행군보다 더 힘든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쫄병 때 탈진이 될 정도로 낮에 에너지를 다 썻는데 밤 10시에 평소에는 점호 취하고
잠잘 시간인데 걸어간다는 것이 24시간을 온 몸을 들볶으니 몸에 채력이 아무리 젊고 건강해도
고갈될대로 고갈되어 판단이 흐릴 정도가 된 것입니다. 걸으면서 졸면 고참들이 개머리판으로
철모를 내리치고 등은 군장을 매어 땀이나고 얼굴은 시리고 몸은 고달프면서 느껴지는 것은
중대장, 소대장도 솔선수범하느라고 짚차를 타지 않고 같이걸어 행군하는 것을 보고 장교도
힘들겠다고, 장기복무하는 하사관들도 힘들겠다, 나는 들어온지 얼마 안되는 이등병이니 제대는
상상할 수도 없고 하루가 이렇게 힘드니 유격은 5박 6일의 첫 체험인데 어떻게 견디어 낼까
걸어가면서 파출소에 새벽 두시경 난로불 피워놓고 경찰관 한 명이 근무하다가 책상에 엎드려
자는 모습이 내눈에 들어왔습니다. 얼마나 부러운지 따듯한 난로에 자서는 안될 근무자 경찰이
조는게 아니라 책상위에 엎드려 자고 있는데 이러면 안되는것을 알면서도 잘 수 밖에 없는
저 경찰이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졸면서 드디어 하조대 유격장에 도착했는데 분대단위로 텐트를치랴
고참들 시키는 대로 심부름 하랴 아침먹고 조금도 쉬지 못하고 식기 닦고 교육집합해서
P.T체조부터 시작하는데 마지막 반복구호는 붙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신나간 올빼미가 반드시
하나씩 나와서 다시 기합을 받고 훈련에 임하여 유격 훈련을 처음으로 마쳤을 때의 그 뿌듯함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힘이 군대생활을 할 수 있는 깡다구와 정신력을 기른것 같았습니다.
외줄타기를 할 때 조교가 죽어도 좋습니까? 마지막 부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이름을 불러보십시오.
죽어도 좋습니까? 네! 구호소리가 작습니다. 죽어도 좋습니까? 네! 진짜로 철이 없고 군인이니깐
유격장이니까 이렇게 묻고 대답하지 죽는다고 하는데 좋다고 할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군대에서
불법을 만나고 출가해서 부처님일을 하면서 나스스로가 지금도 자문자답 하는 구호가
죽어도 좋습니까? 네! 부처님 일하다가 죽는 것은 영광이고 보람이고 신심있는 스님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생각나는 이야기는 그 뒤 1월달에 실시한 혹한기 훈련을 나갔습니다.
보병, 포병, 전차부대 합동으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탱크 옆으로 보병들이 가고 포는 적진을 향해
쏘고 보병들은 함성을 지르고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훈련입니다. 68년도 1월 21일 김신조가 가장
추울 때 무장공비 33명이 내려오는 바람에 추위에 적들이 내려올 때 견디는가 훈련하는 것입니다.
추위에 야간이동하고 숙영지를 정하여 분대단위에 텐트를 설치하고 날이 트기전에 적에게
노출되지 않기 위하여 이동하는 훈련입니다. 나의 임무는 졸병이라서 숙영지 경계근무를 나갔는데
밤새도록 얼어서 온몸이 마비될 정도인데 이빨이 부딪칠 정도로 추웠습니다. 50미터정도에 탱크가
있었는데 장교들과 하사관들은 탱크 근처에 엔진의 열로 몸을 녹이기 위하여 난로처럼 모여서
담배도 피우고 손도 쬐면서 쉬고 있는데 사회 같으면 쫓아가서 손한번 쬐고 얼굴한번 녹이고
오고 싶은데 보초병이 허락없이 근무지를 이탈하면 전시에는 총살이고 훈련은 전투라고 어디
이탏하여 몸 녹이러 탱크쪽으로 갈 수가 있는가 바라만 보고 있는 따듯한 그 탱크의 불을 쬐지 못하는
것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자유가 그립다는 것은 군대 생활을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이런 노래를 들었습니다.
몇미터 앞에 두고 / 김상배
사랑했던 그 사람을 몇 미터 앞에다 두고
나는 나는 말 한마디 끝내 붙일수 없었다
마주앉은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냥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그 사람을 바로 몇미터 앞에다 두고
그리웠던 그 사람을 몇미터 앞에다 두고
하고 싶은 말 한마디 끝내 붙일수 없었다
마주 앉은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행복해 하는 웃음소리를 나는 그냥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그 사람을 바로 몇미터 앞에다 두고
이 노래를 듣는 그 순간 남녀간의 사랑으로 들리지 않고 나는 50미터 앞에 있던 전차로 생각이
났습니다. 행복해 하는 장교들과 하사관들의 모습을 보면서 몇미터 앞에다 두고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쫄병의 심정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몇미터 앞에다 두고... 지금도 한이 맺혀서
불 한번 실컷 쬐는게 원이라고 생각하여 사우나를 아주 좋아합니다, 건강에도 좋고요.
군대생활하면서 또 겪은 쫄병때의 부당한 이야기, 억울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일병때인데 이빨이 너무 아파 보통 고통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유격훈련, 혹한기 훈련 보다도 더 어금니가 아프니 신경이 마비되어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밥도 제대로 먹을 수도 없고 말도 잘 안나옵니다. 너무너무 이가 아파 보니 보통 괴로운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분대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지휘계통을 통해서 중대장허락이 떨어져 외출증을 가지고 바로 옆 동경사 사령부 의무대 치과 치료를 받기 위하여 오전에 의무대에 갔습니다. 쫄병이라고 무시하는데 이는 아파 죽겠는데 계급순이라고 계급이 적용이 군대라고 장교, 하사관을 오전에 봐주고 오후에는 내 차례가 올 줄 알았는데 보안대 군인가족이라고 아줌마가 먼저 치료를 받고 헌병대 가족이라고 치료를 받고 저녁때는 일과 끝났다고 진통제 알약 몇개만 받아먹고 그 다음날 오라고 해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릴 때 쫄병의 서러움을 체험했습니다. 국가를 위해서 제일 먼저 목숨을 바치고 적진을 향해 뛰어들 사람도 쫄병인데 어떻게 이렇게 부당하게 억울하게 입한번 벌려 보지 못하고 하루종일 앉아서 순번을 기다리다가 양보에 양보만 하다가 올 수가 있는가 다시 부대에 가서 사실대로 이야기했더니 그 다음날 또 가라고 해서 갔습니다. 오전은 똑같고요 오후 3시정도 되서 민간인 군인가족 아줌마들이 안보이니 그 때 들어오라고 합니다. 치과의자에 앉아서 내 이빨을 보더니 어금니 두개가 썩었다고 뽑을 수는 없고 콘크리트로 땜빵해 주겠다고 땜질하고 약을 타서 나왔는데 그 뒤에 감쪽같이 아픈것이 사라졌습니다. 그 뒤 부터는 양치질은 세상없어도 하고 단것은 먹지 않고 껌도 씹지 않고 지금까지 이빨관리 하나는 기가막히게 잘 하고 있습니다. 근데 더욱 기가막힌 것은 그 때 때운 어금니에 콘크리트 친 것이 아직까지도 쌩쌩하게 어금니 속에 양쪽으로 있습니다. 치과에 근무하는 강삼보심보살님께 물어봤더니 미제라서 지금나온 제품하고 달리 그렇게 성능이 좋기 때문에 아직까지 쓸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런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 때 군대 의약품은 치과에서도 미제를 썻던 모양입니다. 미제는 그 당시에 똥도 좋다고 했는데 좌우지간 덕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첫날 아파서 고통을 겪던 그 순간 야속한 장교들 스케일링하는 군인가족들 쫄병 이빨은 고통속에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런 심정을 장군들이 절대 모릅니다. 장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사병들의 심정은 알거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군대생활만 제대로잘 하면 업장소멸은 당연히 되고 사회에 나가서 적응잘하고 출가해서 절에 있어도 적응 잘하고 항상 오늘의 현담스님이 불교권에서 대성공을 할 수 있고 이렇게 큰 단체에서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으면서 잘 살 수 잇는 것은 졸병시절에 군대생활 했던 덕분으로 생각합니다.